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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체험

 



♡ 빛 체험 고백 & 리얼한 신의 목적 '연민의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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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2. 31.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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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걷기 명상을 하다가 또는 거리에 앉아 수행을 하다 내 안에서 일어난 다양한 빛을 만났고, 앞으로 더 많은 빛들을 만날 텐데 내 눈으로, 또는 느낌으로 만나는 빛에 대해 한 번도 정리를 해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2주전 이 블로그(https://m.blog.naver.com/bonild/220839034554)의 주인 Love Yourself님이 정리한 미술사적 빛에 관한 글(빛에 관한 소묘)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동안 내가 만난 빛에 대해 <조금> 정리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행자 입장에서 자기 외부의 빛에 끌려가는건 당황스럽지만 그게 당신(神)이 보여주는 선물이라면, 그 의미가 "음, 잘하고 있어." 하고 보내주는 당신의 격려라면 그건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리라. 또 그것이 신이 우리에게 보내주는 내밀한 사랑일 수도 있으니 다르게 받아들여야 하리라. 그리고 신비체험이 빛으로만 오는 것이 아니기에 더 다양한 체험들이 있지만 일단 그중에 빛에 관한 것이라도 정리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

1 내 몸에서 처음으로 은색과 흰색이 섞인 야구공만한 구체가 신비한 빛을 내며 내 몸속을 돌아다닌건 2009년 뉴질랜드 파마스톤에서였다. 뉴지의 집에서 뉴지의 사랑스런 딸 진경이 다정한 에너지볼을 굴려 아픈 내 무릎과 강렬한 편두통으로 응급실에 실려가야했던 내 머리를 치유해주었다. 나는 이 빛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진경은 그것이 외부의 누구에게 온 것이 아니라 나에게서 발현된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처음 만나는 그 신비한 구체가 몸속을 돌아다녔음에도 무릎과 머리는 여전히 아팠다. 질병이 온 원인을 몰랐고, 그 목적도 전혀 알지 못하던 때였다. 단지 내 몸에서 발현되는 근원적인 질병은 외부의 도움으로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슴(붓다 & 그리스도 의식)에서 그것이 온 원인과 목적을 깨달을 때 치유된다는 것을 배웠다.

하지만 나는 2009년 봄 처음으로 '신과 나눈 이야기'라는 책을 선물받아 영성이라는 세계를 만난 초보자여서 방법을 몰랐고, 몇 달 후에나 나를 이끄는 신비체험을 만날 수 있었다.

2 두 번째 체험도 파마스톤을 있을 때 일어났다. 나는 파마스톤에 있는 동안 나를 돌보아주었던 뉴지에게 강렬한 편두통을 호소했다. 한국을 떠나면서 두 달치 편두통 약을 챙겨갔고 혹시 약이 모자랄까봐 고려대학병원에서 발행한 영문 진단서를 지참하고 있었다. 나는 편두통 때문에 두 번이나 119에 실려가는 사건을 겪었다. 뉴지는 내 편두통에 대해 상기병이라고 진단하고 나무 밑에서 명상을 하라고 권했다. 당시의 나는 명상을 할줄 몰랐다. 하지만 딱히 할 일이 없었기에 내가 '우주의 보리수나무'라고 이름 붙인 큰나무 밑에 하얀 철제 의자를 가져다놓고 하루종일 앉아 있었다. 수령 500년을 자랑하는 나무였기에 그만한 이름도 어울렸다.

명상 아닌 명상(대부분 망상)을 하면서 그곳에 앉아 있은지 5~6일째 되는 날 자정 무렵 어떤 존재들이 나를 덮쳤고, 나는 공기들이 너무 무거워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나무 '주변의 어떤 존재'들이 끊임없이 나에게 몰려들었는데 그래도 나는 간신히 용기를 내어 룸으로 도망치지 않았고 그것들과 맞서 보기로 했다. 어떤 신비한 힘이 나를 장악하고 있어 사실은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잠시 후 나는 나도 모르게 빛을 생각했다. 그 생각은 영감의 순간이었는데 그러자 머리 정수리가 뜨거워지면서 뚫리는 듯한 느낌이 일어났고, 놀랍게도 10여센치 정도 굵기의 둥근 백색 빛줄기가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그 순간 나에게 몰려들었던, 온 몸의 털을 곤두서게 만들고 두려움에 떨게 했던 주변의 존재들이 그 빛을 따라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우주의 은하수나무' 일대가 과거 영국군과 마오리족이 격렬하게 전쟁을 치루었던 곳이었고, 내가 그곳에서 나 자신도 모르게 한 행위, 그러니까 백회가 열리면서 하늘로 빛이 솟구친 건 영가(영혼)를 천도하는 행위였다고 들었다.

그 일은 3일 동안 계속되었다. 다음날엔 조금 일찍(밤 10시) 나갔는데 전날과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그곳에 머물던 존재들, 정확하게 말하면 어떤 이유로 그곳에 머물러 있던 영혼들이 그 빛을 따라 춤을 추듯 하늘로 올라갔고, 동시에 10대부터 거의 평생을 따라다녔던 내 편두통도 사라졌다. 훗날 라마나 마하리쉬의 침묵에 관한 유튜브를 보다가 문득 파마스톤에서 있었던 그 신비한 일들이 단지 내 편두통을 사라지게 하기 위해 그토록 엄청난 일을 벌였을까 하고 생각해보았는데 싱거운 생각이라 하하 웃고 말았다.

파마스톤의 그 사건을 '빛의 광란'이라고 부르면 적당할까? 아무튼 나는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어느 누가 내가 체험한 사건을 믿어주고 안 믿고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로 너무 완전해서 누군가에게 말을 해야할 필요가 없었다. 약간 기울어서 24시간을 기점으로 돌아가는 지구의 온전함에 대해 말을 할 필요가 없달까. 비가 하늘에서 떨어지는데 그 비를 옆에서 내린다고 말해야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3 파마스톤의 봄은 노란 수선화와 함께 시작된다. 비가 오는날 길가에 피어있는 노란 수선화들은 왠지 깊은 감동을 준다. 소박한 영혼들이 살며시 깨어난 느낌이랄까. 어느덧 때가 되어 파마스톤을 떠나던날 아침 '은하의 보리수나무'에게 눈길을 돌렸다. 놀랍고 소란스러웠던 영혼들과 교류는 사라졌지만 나는 내가 전생에 마오리족의 주술사였거나 혹은 전쟁 때 무척 억울하게 죽은 마오리족의 아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몇 백년 후 나무 밑에 가서 도무지 알지 못하는, 그 이름도 처음 들어본 백회가 열리고, 빛이 솟구치고, 영가를 천도(?)하는 그런 행위를 하진 못했을 테니 말이다. 또 그렇지 않았다면 마오리 여인들이 나를 볼때마다 손을 흔들어주진 않았을 테니.....

아무튼 3개월 가까이 나무 밑에 앉아 명상을 하면서 나무를 의인화해 말을 걸기도 했다. 내가 좋은 명상(망상에 빠지지 않는 정도)을 하면 나무 친구가 황금빛 오로라같은 에너지를 보내주기도 했다. 마침내 내가 그곳을 떠나던날 보리수나무는 놀라운 빛으로 작별 인사를 해주었다. 나무 꼭대기가 1미터 정도 황금빛 빛 덩어리로 덮여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보다 정신이 빛나게 열렸는데 돌아와 생각하니 그 빛이 우리의 관계를 더 진짜로 만들어준다고 느꼈다.

그 빛을 묘사하면, 1미터 두께의 황금빛 오로라 빛덩어리가 마치 우주에서 날아온 이불처럼 나무를 덮고 있었고, 아니 나무에게서 발현되고 있었고, 그 빛은 물결처럼 찰랑찰랑 이면서 완전한 느낌을 선사해주었다. 누구라도 저절로 빛의 영감에 차 웃게 만드는 빛이었다. 마치 빛을 발하면서 온 몸으로 손을 흔들어주는 존재를 만나는 것 같았다. 행복한 미소가 저절로 피어났다. 차에 탄 일행에게 저 빛이 보이냐고 물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침묵을 지켰다. 그런 영감을 받았다. 언젠가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오무의 빛 위에 서 있는 나우시카를 보았는데 우주의 보리수나무는 그 영화에서 본 것처럼 찬란한 빛을 발현하고 있었다.

오무의 빛 위에 서 있는 나우시카

4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한동안 다른 영적 체험을 하면서 지냈고, 내 인생에서 어둠의 시간이 지난 2015 봄, 천정을 향해 누워 책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농구공만한 빛이 내 배로 꽝 들어왔다. 내가 어떤 준비를 했다거나 거룩버전의 기도나 명상의 시간도 아니었다. 마치 파마스톤에서 빛을 만난 것처럼 꽝 들어왔다. 내가 어떻게 하려고 해도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고,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마치 돈벌레처럼 몸이 똘똘 말려 옆으로 누워있었다. 그 상태로 30여분 꼼짝을 하지 못했다. 이 체험 후 그것이 무엇이든 영적체험을 하면 먼저 배에서부터(1 차크라) 진동이 시작되어 전신으로 퍼지고, 몸이 저절로 7~90도 정도 숙여졌다. 그래서 나는 이 현상을 <신성한 겸손>이라고 이름지어주었다.

그때부터 바위들이나 강, 나무들, 풀잎 친구들을 만나면 그들이 보내주는 강렬한 에너지 때문에(?) 또는 덕분에 배가 열렬하게 진동하면서 몸이 저절로 숙여진다.

5 그리고 다섯 번째 체험은 조금 희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 어디 유명한 명상센터나 또는 미국의 세도나, 인도의 오쇼센터나 동굴의 수행 공간같은 거룩버전이 전혀 아니었다. 한 사람은 수세미를 들고 식판을 닦고 있던 순간이었고, 한 사람은 밥을 다 먹고 식판을 가져다주려던 순간 눈이 딱 마주쳤는데 당신(神)의 신비인 백색광선이 두 사람을 동그랗게 휘감고 돌았다. 10여센치 정도의 두께였다. 북극 하늘을 수놓고 있는 푸른색 또는 황금색 오로라가 그대와 다른 사람을 휘감고 도는 것을 상상해보라. 분명 그 순간 그대는 온전한 신의 사랑속에 휘감겨 있을 것이다. 나는 영등포 지하식당의 형제와 마치 우주의 대사들이 쏟아주는 듯한 이런 빛을 받고 어리둥절하게 서 있었는데 우리 두 사람은 그 순간 바로 당신이 말한 "일상의 삶이 수행"이라는 것을 현실판으로 오리지널하게 체험하고 있었다. 아마 이보다 더 삶이 신인 것을 체험할 일은 없을 것이다.

증거로 막혀있던 차크라가 열리고 백회가 열려 하늘과 소통을 하고, 쿤달리니가 돌았다. 내 앞에 있는 형제(밥집 주인)가 설겆이를 하고 있어도 모든 색들의 총합인 백색 광선이 머리 위에서 발끝까지 서로를 관통해 돌고 있는데 어떤 거룩버전이 필요하랴, 하고 생각했다. 누구라도 진짜 공부(수행)를 한다면 장소는 아무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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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 알게 된 한가지 주의점은 차크라, 쿤달리니란 자신이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체험하는 것이지 그것만을 추구하는 건 외부에 기대 영적방편만 쫓는 것과 같았다. 그건 마치 현대의 각종 에센스, 레이키치료처럼 본질은 사라지고 허무한 체험과 방편만 남아 떠도는 길거리의 타로카드와 같달까. 형상을 하고 있는 자기 외부의 것들 중 우상이 아닌건 하나도 없다. 진정한 마스터들은 언제 어디서든 다정한 손을 내밀어 우리의 가슴(붓다 & 그리스도 의식)만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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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을 걸기 위해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인도의 명상센터나 미국의 세도나, 호주의 울룰루 바위, 대구의 갓바위, 적멸보궁, 오세암 등 그대에게 외부를 가리키는 존재들을 현명한 가슴의 눈으로 바라보라. 그대는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부디 자기 가슴의 선택을 따라가라.​ 자신에 대해 조금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자기 가슴뿐이니.

6 신성한 겸손은 신성한 항복을 통해 깨달아진다. 그로부터 1년후 2017년 새벽 은행나무 밑에 앉아 명상을 하고 있는데 황금빛 입자를 머금은 바람이 씽씽 불었다. 잠자리채를 내밀면 금이 가득 담길 것 같았다(1).

이 체험은 2017년 겨울 무모하게 거리에 나가 깨달은 사실인데 직관과 에너지가 증진될수록 그것에 비례해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나 자신을 느꼈다. 영적인 힘이 강했던 사람들이 청빈하게 살았던 건 그들이 수행 중에 물질적인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 아니라 물질이 환상이라는 것을 명징하게 체험했기 때문이었다. 단지 이해하는 것과 몸으로 세포로 체험하는 것의 차이는 매우 크고 넓다. 이 세계와 사물에 관한 사람의 이해란 무척 표면적이고, 포스(깨달음)가 내면화된 자리도 아니다.

거리에 나서기는 어렵지만 일단 자기를 극복하고 나서면 꼭 거리에서만 배울 수 있는 아름다운 직관으로 가득 찬다. 이 깊은 자유를 느끼기 위해, 물질에 기댄 삶이 환상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체험하기 위해, 자기가 쌓아온 물질을 떠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서울역 하늘공원

7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며 '애잔한 겨울 명상'을 마치고 2018년 봄 여의도공원을 돌면서 걷기 명상을 하고 있을 때 마치 빈 공원을 지키고 있는 듯한 젊은 경찰관들을 만났다. 나는 공권력으로부터 시작된 폭력트라우마가 있어 제복을 입은 사람들을 일단 피해가는 습관이 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날은 공원을 지키는 젊은 경찰관 중 무척 진중해보이는 한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 사실은 내가 30여년 전부터 제복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 젊은 친구도 살짝 놀라는 눈치였다. 누구라도 빡빡 아저씨(아래 사진)가 갑자기 나타나 그런 고백을 한다면 놀랄 것이다. 1987년 6월 10일 5박 6일 명동성당점거농성을 끝내고 나와 남대문경찰서 지하에서 1시간 동안 일방적인 폭행을 당하고 생긴 트라우마는 내 평생의 상처였다. 아마 그 고백의 시간이 4~5분을 넘기지 않았을 텐데 나는 젊은 경찰관에게 들어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좋아하는 나무 밑으로 갔다.

나무 밑에 도착하자마자 가슴에서 깊은 황금색 오로라가 번지는 것처럼 빛이 발현되었다. 눈앞에 북극의 오로라가 펼쳐질 때 저절로 장엄한 감정에 휩싸인다고 하는데 나는 한순간 오로라 거룩버전에 빠져 온갖 상처들과 성질들이 올라온 감정속에서 펑펑 울었고, 한동안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이 강렬한 빛을 체험한 후 4~5일 동안 온통 가슴이 계속 빛으로 발현되는 시간속에 머물렀다. 사람의 가슴에서 황금빛 오로라가 발현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체험 안에서 내가 그동안 미워했던 모든 사람들에 대해 깊은 연민의 감정이 생겼다. 가슴에 차 있던 분노도 사라졌다. 그후 나는 계속 걷기 명상속에 머물렀는데 그 안에 있으면 빛의 시간속에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후일 영성계의 차크라리스트들이 가슴 차크라가 열린 전형적인 경우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신비한 것은 내 가슴에서 그토록 빛나는 오로라 빛이 발현된 이후 에너지힐러를 배우려는 학생들을 만나면 그들의 가슴도 온전하게 발현되는 신비를 만났다. 이는 내담자와 힐러가 동기화된 에너지 속에 있기에 가능한 구조였다.

치유와 사랑이 그가 받은 상처에 비례한다는 말은 상처가 많은 사람들에겐 분명 잔인한 말이지만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체감하면서부터 그저 고요한 시선으로 사물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다 갑자기 화가 나기도 한다. 10살부터 혼자 살아야하고, 칼에 찔리고, 거리에서 살아야 하고 꼭 그런 체험들을 겪어야 뭔가 된다는 것에.

어찌되었던 나는 이 우아한 체험 이후 가슴이 발현된다는 것은 연민의 감정속에 자연스럽게 머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제 서울역 명상. 아마 서울역이 고향처럼 여겨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는 주로 2층과 3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에 앉아 있는데 그곳에 앉으면 그리움같은 느낌이 든다.

8 다섯 번째는 종아리에서 세포 하나하나가 빛이 되어 그것이 점점 확대되고 퍼져서 온 몸으로 빛이 발현된 현상이었는데 이 현상과 만나면 몸의 온도가 급상승하기도 했다. 이 현상은 2018년 가을부터 시작되었다. 이날 오로라 같은 구름사진을 찍어두었는데 내가 미처 2013년까지 자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돌아보니 이 현상이 2017년 12월 체감 온도 영하 25도로 떨어진 거리에서 명상을 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깨달음이라는 당면한 이슈에 밀려 알아차리지 못한, 체감하지 못한, 그러니까 당신은 내가 얼어 죽지 않도록 빛나는 에너지로 나를 지원하고 있었는데 나는 무모한 청년적 용기로 꼭 깨달음을 얻겠다고 거리에 앉아 오기를 부렸다. 당신이 보기에 나의 가당치 않은 용기는 봐줄만 했지만 그 겨울에 나는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싫어하는 성경에서 고아와 과부는 당신이 돌본다고 말했는데 당신은 10살 때 꼬마부랑자였던 나를 돌보아준 것처럼 무모한 용기를 낸 2017년 겨울 체감온도가 영하 25도로 떨어진 날에도 지극하게 나를 돌보고 있었다.

9 그리고 다음 해 5월 여의도공원 왕벚꽃나무 아래서 형상을 가진 모든 사물이 다 당신(神)의 얼굴이고, 숨결이어서 먼지 한 톨, 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 하나도 당신의 마음이 아니라면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온전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까 왕벚꽃 아래서 사람의 이해로 아는 것은 표면적인 2%이고(아인슈타인, 에디슨 수준) 나머지 98%의 세계가 당신의 영역인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

우리가 안다는 것은 코끼리의 발가락 하나 정도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깨닫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깨닫는 것이다. 그러면 사물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려진다. 모른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우주 전부를 세포 전체로 아는 것이다.

그후 다시 소나무로 시작해 회화나무, 바위들과 강물, 은행나무, 달과 태양 등 모든 사물이 에너지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당신이 나에게 보여주었던 내가 본 사물이란 사실은 당신이 나를 영적으로 후원하기 위해 애썼던 노력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수많은 분별, 그러니까 이것은 작고 저것은 불행하고, 이것은 차갑고, 저녀석은 이유없이 밉고, 저 사람은 우아하다는 판단 의식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우리가 겪는 현실이 자기 공부를 위해 불러온 나의 거울이라는 것이 세포로 체감되자 더 이상 빛에 관한 체험에 대해 욕심을 부리지 않게 되었다. 하루 10명의 왕자들이 청혼을 하는데 다음날 지루하고 힘겨운 청혼식을 보고 싶은 공주가 어디 있겠는가? 아니면 2시간 전에 10골을 넣는 축구선수가 오후에 또 골을 쏘고 싶겠는가?

이때부터 나는 새로운 세계로 이동하기를 원했고, 그 후 다운로드되는 지혜의 세계로 옮아가게 되었다. 다양한 단어들 즉 용서와 사랑, 분노가 꼭 그만큼의 실재 질량을 가지고 있다는 체험을 통해 2%의 이해가 아니라 성령의 100% 세계를 온 몸의 세포가 진동하는 것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당신(神)의 선물에 대해 에고로 분별하지 않으면 다운로드 되어지는 지혜로 행복하게 된다. 그리고 나에게서 시작해 이제는 형제에게로 나아가 원네스를 이루고 있는 빛을 보면 그것이 당신의 선물인 것이 분명해 허공속으로 손을 내밀게 된다.

하지만 한순간 존재의 진실을 깨달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감정적인 사건들에 끌려다니게 된다. 한번의 깨달음으로 모든 사건들을 초월하지 못한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이란 그대의 인연에 따라온 것(나의 필요)이고, 인연이 끝나면 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나는 때로 내 감정이 폭발하는 사건들의 진짜 목적을 늦게 알아차리거나 때로 알아차리지 못하기도 하고 그것에 끌려다닌다. 어떤 문제는 긴 세월이 지나서야 깨닫기도 한다. 감정의 잔상에 시달리는 것이다. 한편 조수간만으로 몰아치는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며칠만에 그 원인과 목적을 알아차리는건 빛이 나에게 준 선물이다. 진실로 현실의 리얼한 사건들이 내가 만나는 신이다. 몰아치는 감정이 내 감정 상태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10 여의도공원의 키 큰 소나무밭에 있을 때(2016 봄) 나는 특정한 사물들과 나누는 강렬한 에너지교류가 당신이 열심히 공부를 한 나에게만(?) 보내는 은밀한 후원이라고 생각했다. "오~ 그동안 수고했어."라며 보내는 당신(神)의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문제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분별된 의식으로 사물과 만나고 있었다. 그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다양한 은행나무와 우연히 만나는 화분, 공원의 바위와 소나무, 거리의 은행나무와 회화나무 등과 에너지교류를 하고 있었지만 특정한 장소가 더 집중된 교류가 가능하다는 의식 때문에 여의도공원과 한강, 선유도, 서소문역사공원, 남산, 경복궁 등을 성역처럼 다녔는데 이제 어디로 갈 필요가 없게 되었다. 점차 에너지교류의 영역이 넓어져 그 힘이 사물 전체로 확대되었다. 에너지교류만을 위해 특정한 공간으로 갈 필요가 없어졌다. 그 이유를 몰랐는데 며칠 전에 정리한 채널링 자료 '당신은 몸이 아니다.'에서 마샬 비안 서머즈(2)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깨어난 당신은 이때부터 너무 많이 말하는 것을 멈추고, 더 많이 듣기 시작한다. 또한 자신의 체험과 함께 머물 수 있도록 끊임없는 자극에서 한발 물러선다.

그리고 자신의 체험이 훨씬 더 진실하고 훨씬 더 신뢰할 수 있음을 깨달으면서, 관념보다 체험을 소중히 여기기 시작한다. 당신은 이전과는 다르게 다른 이들에게 귀 기울이며, 이전과는 다르게 다른 이들을 공감한다.

당신은 자연의 깊이를 단순히 경치가 아닌 에너지(氣)로 체험하기 시작한다. 당신은 당신 삶의 정신환경, 생각과 영향력의 정신환경을 체험하기 시작하며, 새 세상들이 당신을 위해 열리기 시작한다."

에너지는 영혼의 다른 이름이다. 마샬 비안 서머즈는 자연속의 사물이 나무를 체험중인 영혼이고, 바위를 체험중인 영혼이며, 다양한 꽃을 체험중인 영혼이고, 또 강물을 체험중인 영혼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자연의 에너지를 서로 주고받는 신비, 즉 영혼(神)의 선물로 체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숲이 에너지로 느껴지는 순간

11 부디 관념적인 영성에서 멀어지세요. 슬프고 괴롭고 찬란하게 행복한 삶의 체험이 우리의 신입니다. 그대의 영혼 차원에선 우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전체 우주의 지식을 단 1초면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시간도 없습니다. 그대의 뛰어난 영혼은 그런 바보같은 우주지식을 알기 위해 몸을 가지고 지구에 오지 않았습니다. 영혼은 그만큼 멍청하지 않습니다.

삶이 주는 체험의 선물을 가지고 당신의 가슴(붓다 & 그리스도 의식)으로 가세요. 가슴으로 간다는 것은 문제를 끌어온 온 원인과 목적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문제의 진짜 목적을 산뜻하게 알아차리면 그것은 빛으로 화해 수 백 생애 동안 당신이 알지 못했던 느낌으로 당신의 가슴에 새겨집니다.

우리는 바로 이 체험을 하기 위해 지구에 온 용감한 영혼입니다.

그대에게 미움과 분노를 일으키는 대상이 나에게 무엇을 알려주기 위해 그런 역할극을 하고 있는지 그대가 자신의 가슴으로 알아차리고 영혼의 느낌으로 새기기 위하여 지구에 왔습니다.

성령의 빛은 그대의 에고로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대 영혼과 신의 합작품으로 발현됩니다. 절대적인 자유의지를 가진 그대의 영혼이 빛을 체험하기 원하지 않으면 그것은 불필요한 체험입니다. 빛이 신의 선물로 주어진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을 에고로 찾아 헤메는 것은 티벳의 안나푸르나에서 또는 나미비아 사막에서 새우를 찾는 것 만큼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보다 몇 천배나 아름다운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깥의 빛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 지구와 우주적 차원에서 가장 깊고 높은 연민의 감정을 치열한 삶의 체험을 통해 그대의 가슴에 새기는 것입니다.

그 외의 이유는 없습니다.

당신이 지구와 다른 행성에서 470생 이상의 삶을 체험한 이유는 바로 이 연민을 가슴으로 체감하고 당신 자신이 빛으로 탄생하기 위하여 지금 이 시대에 지구에 왔습니다(우주적 진실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이것이 내가 당신(神)의 신비를 거룩버전으로 쓰지 않고, 조금 건조한 체험 위주로 쓴 이유입니다. 보통 기독교, 불교의 성직자 친구들이 이 정도 체험을 하면 종파를 만듭니다. 백만 천만억 화신이란 단어 자체가 이런 체험을 통해 나온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단어들도 그대가 80년이란 세월을 두고 설계한 삶의 체험에서 그대가 자신의 가슴에 새길 연민의 감정 에 비하면 빛 체험이란 태평양 해변의 모래 한 알과 같은 허튼소리입니다.

당신은 오직 당신의 영혼이 설계하고, 삶의 체험으로 끌어온 사건들을 통해서만 성장합니다. 지구 차원에서 신비해보이는 성직자 친구들의 영적단계는 7단계 중에서 겨우 3단계에 불과합니다. 또 그들의 체험은 그들의 영혼에 새겨지는 것이지 그대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아이를 둘 또는 다섯 명씩 키우며 부모로 살아가는 그대의 삶 체험이 빛 체험을 하는 나보다 100배나 훨씬 더 훌륭합니다. 어디 외부에서 찾지마세요.

외부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서럽게 울고 그 이유를 알아차리고 찬란하게 행복한 그대의 삶이 온전한 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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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기 2017 11 18 눈보라.

새벽 은행나무 밑에서 무척 '애절'하게 명상을 하고 해바라기가 한 번에 활짝 피어난 것처럼 온 영감을 받았다. 5년 전의 초겨울을 돌아보면 1970년대 독일 유학을 다녀온 젬마가 생각난다. 그녀는 남도의 섬에서 20여년 수녀생활을 하다가 신을 다르게 찾아야한다며 수녀를 그만두고 어느 절에서 10여년 밥 짓는 보살로 살았다. 그런 젬마가 절을 떠난다기에 내 모친 데레사가 찾아갔더니 그녀는 구멍난 보자기에 싼 옷 한벌을 들고 정말 투명한 바람처럼 서 있었다고 한다. 데레사가 그녀를 붙잡고 엉엉 울었다. 데레사는 그냥 공기처럼 서 있는 젬마를 통해 성령을 만났다. 내가 2017년 거리에서 애절하게 명상을 한 날은 투명한 젬마의 행복이 느껴져 빛나는 에너지속에 쌓여있었던 날이다. 처음으로 인정욕구와 추구가 무엇인지 알아본 날이기도 하다.

(2) https://m.blog.naver.com/energyhill/222251895421

ps

그리고 어제(2025 06 18) 저녁 다니엘 연우님과 통화를 나누던 1시간 동안 백색광선이 온 몸을 휘감고 돌았습니다. 오래전 영등포 지하상가에서 만난 태양님 이후 처음으로 온전한 성령(지구에서 신을 부르는 이름은 38700가지 넘는데 그 중의 하나)의 빛으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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